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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권의 상실과 회복의 서사 : <이춘풍전>(2)

장경남 쪽지

부인 김씨 : 가부장권 회복의 서사

 

  춘풍의 처 김씨의 행위를 중심으로 한 서사는 실추된 가부장권의 회복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김씨는 방탕한 춘풍 대신에 삯바느질을 해서 가산을 일으켰다. 가장으로서의 경제권을 포기한 남편 대신에 가장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김씨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삯바느질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평양기생에게 매혹되어 가산을 탕진한 남편을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이춘풍전>의 후반부는 김씨가 이춘풍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이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품 후반부는 김씨의 행위가 사건전개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성주의 시각에서 작품을 보아왔다. 즉, 김씨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춘풍전>에 대한 기존 연구는 이춘풍의 처 김씨를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근대적 여성’으로 평가하였다. 여성의식의 각성이라는 측면에서 김씨를 평가한 것이다.

  김씨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작품 전반부를 실추된 가장권에 대한 서사라고 하면, 후반부의 주지를 단순히 여성의식의 각성이라는 것으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실추된 가장의 권위를 현명한 부인이 회복해 가는 과정을 서사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남성의 일방적인 강압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 제도의 최대 희생자라 일컬어지는 여성들의 자발적인 동의 협조에 힘입어 유지 강화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몰락한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역할은 자식이 한다. 그리고 지어미는 자식을 뒤에서 돌보아 주면서 자식으로 하여금 가권을 회복하게 한다. 이때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한다. 그래서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면서 자식 뒷바라지에 힘을 쏟는 것이다. 그리고 장성한 자식은 효성으로 부모를 공양한다. 여성의 희생은 효도로 보상을 받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식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해갈 수 있었고, 또는 집안 살림을 일구어 놓음으로써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난을 참아가면서 부권 사회에 충실할 수 있었다. 남편의 집에 편입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던 젊은 여성은 점차 자신이 낳은 ‘핏줄’을 이 집안에 더해 감으로써 자신의 세력권을 구축해 간다. 여자는 공식적 가족과 달리 자신을 중심으로 한 ‘자궁 가족’을 갖게 되는데 자궁 가족 내에는 자신이 낳은 자녀들과 며느리가 포함되며 남편은 별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즉, 여성에게는 일정 기간 어려움을 이겨나가기만 하면 자신의 권력의 기반인 자궁 가족을 통하여 응분의 보상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의 차원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효가 바로 응분의 보상이 되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상층 여성은 과거 급제자 아들을 길러 내는 어머니로서의 명예와 보상이 있었고, 그러한 출세를 기대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집에서도 아들이 장성할수록 연장자로서 효도를 받고 며느리를 지배하며 손주를 품안에 거느리는 여가장으로서의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열심히 일하고 참기만 하면 언젠가는 어머니로서 보상을 받게 되며 남편 집안의 당당한 조상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며 따라서 가부장적 체제에 자발적으로 충성을 하여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자식을 설정하지 않았다. 지어미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이다. 춘풍의 처 김씨에게 자식을 통한 보상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평양에서의 남편의 행위는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자식의 효도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편에게 의존한 것이다. 남편이 정상적인 가정생활로 돌아와야 자손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올바른 부부관계의 정립 혹은 정상적 가정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것이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주지는 가부장권의 복원으로 보아야 한다.

  춘풍이 평양으로 장사를 가서 상걸인이 되어 추월의 집에서 불사환 노릇을 한다는 말을 소문으로 듣고, 김씨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춘풍을 데려올 계획으로 김승지 댁에 드나들며 승지 댁 노부인을 조석으로 섬긴다. 노부인은 김씨의 후의에 흡족해 한다. 그 결과 김씨는 호계비장으로 평양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김씨의 일련의 행동은 오로지 남편을 데려오기 위한 것이다. 김씨가 남편을 위해 지혜와 담력을 발휘한 것이다. 결국 김씨는 남장을 하고 비장의 역할을 자청하여 평양기생 추월에게서 남편의 돈을 도로 찾아낸다.

  김씨의 남복과 이어지는 춘풍의 귀환은 가부장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씨가 굳이 남장을 하게 되는 이유도 이런 면에서 찾아야 한다. 아직까지 여성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에 남장을 해야 만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가 있었다. 즉 사회적인 지위는 남성만이 가질 수 있는 사회였기에 김씨의 남장은 필수적이었으며, 남자가 되어야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김씨의 남복에 대한 평양감사의 반응이다. 김승지가 평양감사가 되자 대부인은 김씨에게 같이 평양에 가서 이춘풍을 찾아보라 한다. 김씨는 오라비를 비장으로 천거하고, 실제로는 자신이 직접 비장이 된다. 평양감사는 이 사실을 알게 된다.

  평양감사는 대부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춘풍 처의 비장 소임을 승낙한다. 평양감사가 김씨의 남복을 묵인한 이유는 김씨의 행위가 남편의 가장권을 회복하기 위한 계획이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남복에 대한 묵인은 김씨가 추월을 혼내주고 춘풍을 귀환시키는 데까지 유지된다.

  평양감사는 김씨의 행위를 묵인해 주는 정도를 넘어서 직접 나서서 춘풍의 돈을 찾게 해 준다. 평양감사의 역할을 주목해 보면 춘풍 처를 중심으로 한 서사의 주지는 분명 가부장권의 회복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씨가 여성으로서 자신의 지위나 영달을 꾀하는 것이었다면 비장의 소임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씨의 행위가 분명 가부장권 회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비장으로 승낙하고, 그녀의 행위를 묵인한 것이다. 이 작품 말미의 내용을 보자.

 

  대저 일개 여자로서 손수 남복을 하고 호계비장으로 내려가서 추월도 다스리고 춘풍 같은 낭군도 데려오고 호조돈도 갚고 부부 둘이 종신토록 살았으니, 만고에 해로한 일인 고로 대강 기록하여 후세 사람에게 전하나니, 만일 여자 되거든 이런 일을 본받으옵소서.

 

  김씨가 남복으로 변장을 하고, 비장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 작품이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을 보면 이 작품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가장의 마음을 바로 잡고, 집을 일으키는 것이며, 이의 해결에 남성으로의 변장과 비장의 역할은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화폐경제시대로 전환되던 새로운 경제 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남편 춘풍이 필요했다. 결국 김씨는 여자의 힘으로 직접 삶을 개척하기보다 자신의 운명이 종속되어 있는 남편을 통해서 삶을 개선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남편을 가장으로 복귀시킨 것이다.

 

  그날 밤에 부부 둘이 원앙금침을 펼쳐 덮고 누웠으니 아주 그만 제법일세. 그럭저럭 자고 나서 그 이튿날 호조 돈을 다 바치고, 수만 냥 재산으로 노비와 전답을 다시 장만하여 의식이 풍족하고, 아들 딸 낳아 화목하게 지내니 좋을시고.

 

  이처럼 작품의 대단원에서 춘풍 내외는 다시 춘풍을 중심으로 건실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결국 김씨는 춘풍에게 가장의 권위를 되찾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전환기적 세태 속에서도 여전히 주류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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