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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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권의 상실과 회복의 서사 : <이춘풍전>(1)

장경남 쪽지

  <이춘풍전>은 195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공개된 작품으로 19세기 중엽에 지어진 작품으로 본다. 10여종의 이본이 전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세부적 장면에서 차이를 보일뿐 대체적으로 같다.

  <이춘풍전>이 지어졌던 조선 말기는 생산력의 발전,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등으로 인해 양반층의 증가와 분화가 촉진되던 시기였다. 양반층이 증가함에 따라 더 많은 수의 남성들이 양반의 후예임을 자칭하며 중앙 또는 지방의 정치권에서 활약할 꿈을 키우며 노동을 천시하고 일반적 경제활동에는 관심이 없는 선비를 이상형으로 삼았다. 사회적 상황이 이러했던 만큼 그를 보완하기 위한 여성의 활동의 폭은 더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생계 유지에서부터 봉제사ㆍ접빈객을 위한 제반 활동은 여성의 일이었다.

  양반층이 증가하면서 지방 양반들의 중앙 관료로의 진출이 어려워지고 양반층이 비대해지는 조선 후기로 가면서 향촌 내의 특권 유지가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 향반들은 더욱 유교 윤리를 절대화하고 문중 중심의 조직화와 득세 가문들끼리의 배타적 결성을 통하여 신분 확보를 꾀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가부장권을 강화하여 가부장권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 되었으며, 여성은 이의 유지를 위한 종속적 지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봉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비혈연적 상인조직과 같은 근대적 체제가 아니라 사대부계급이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계 중심ㆍ남성 중심으로 친족 집단을 배타적으로 조직화하였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여성은 가부장권 확립 또는 옹호를 위해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이춘풍의 행위 : 가부장권 상실의 서사

 

  <이춘풍전>을 이춘풍의 행위를 중심으로 한 서사로 볼 때 주목할 수 있는 것은 가(부)장권의 극단적 추락이다. 이춘풍은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왈자패들과 어울려 주색잡기 풍류로 탕진한다. 춘풍은 그의 처 김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급기야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이후로 주색잡기를 하지 않는다는 수기를 써 주면서 집안의 모든 일을 맡기겠다고 한다. 스스로 가장이라 칭하면서도 집안 모든 일을 아내에게 맡긴다는 춘풍의 말은 가장권 상실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인 몰락은 가장권의 상실과 직결된다. 이 수기는 가부장권 상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지이다.

  <이춘풍전>이 형성되던 시대는 경제사회가 화폐경제시대로 전환되면서 상업계층이 성장하고 이들이 자본을 축적하면서 신분구조의 붕괴 및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던 시대였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어야만 제대로 행세를 할 수 있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춘풍은 주색잡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경제적 능력을 완전히 잃고 만다. 여기서 이춘풍은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확고한 위치를 획득하지 못하고 집안에서조차 가장의 위치를 내어놓지 않을 수 없었던 생활능력을 거세당한 무능력한 남성상으로 부각된다. 남성으로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춘풍이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금치산선고는 자신의 사회적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회 구조가 변동할 때, 새로운 사회구조에서 탈락되는 기득권 계층들이 생겨난다. 이들은 쉽게 새로운 경제구조에 편입되지 못하게 된다.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이춘풍은 그러한 유형의 인물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춘풍의 개인적인 경제력 상실은 당시 가부장의 경제적 무력성을 상징하는 표지일 가능성이 높다.

  춘풍의 경제적 능력 상실로 인해 부인이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됨으로써, 춘풍의 가정은 남성(남편)이 아니라 여성(아내)이 가족 공동체의 경제적 주체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 구조의 변동시 가장인 남성의 노동력 상실은 여성의 노동력으로 쉽게 대치되는 현상을 보이는데, 김씨의 침재나 길쌈에 의한 가산의 회복 노력은 이와 같은 상황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특히 조선조 후기 사회에서 많은 남성들은 양반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 경제 활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성의 활동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여 생계 유지와 가산 회복의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여성에 의해서 생계가 유지되는 현상은 그만큼 남성의 무능력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춘풍은 있으나마나 한 가장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즉 춘풍을 통해서 가부장권 상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부인 김씨의 노력으로 가산이 회복되자, 춘풍은 가장권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가장권 회복의 구실은 경제적 능력의 회복이다. 이춘풍은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을 겪었지만, 아내의 치산을 바탕으로 뒤늦게 새로운 사회질서에 편입되어 가장권을 복원시키려 한다. 그래서 춘풍은 경제 활동의 중심지인 평양으로 향한다. 평양에 가서 장사를 하여 잃었던 가산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는 추락된 가부장권의 회복과 관련된다고 본다. 그래서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폭력으로 아내를 제압하고는 평양행을 단행한다.

  김씨는 춘풍이 전에 써 주었던 수기를 내밀면서 평양행을 막지만, 춘풍은 도리어 “요망한 년의 잔말”로 치부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물리적인 힘을 행사했다는 것은 춘풍의 경우 전통사회에서 통용되던 ‘가장’이라는 막강한 이데올로기가 이미 그의 가정 내에서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이라는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힘에 의해 자신의 입지를 세우고 그것을 발판으로 다시 세상에 나가고자 하는 춘풍의 행동은 건실한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권위만을 내세운 가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춘풍은 급변하는 시기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까닭에 전통적인 가장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흔들리는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 간 춘풍은 그곳의 기생 추월에게 매혹되어 가져간 돈을 추월에게 다 퍼붓고 만다. 2,500냥을 1년이 못되어 추월에게 바친 춘풍은 추월에게 구박을 당하고 쫓겨날 지경에 이르자 그 집에서 불사환 노릇을 하며 간신히 붙어 있게 된다.

  춘풍은 상실된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 평양행을 단행하였으나 새로운 경제구조에 익숙하지 못한 까닭에, 또는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까닭에 이전보다 더 심한 추락을 하게 된 것이다. 실추된 가장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춘풍에 대한 추월의 호칭이다. 춘풍에 대한 호칭이 ‘서방님’에서 “여보시오, 이 양반아”, “여보쇼 이 사람아, 자네 그 말 다시 마쇼. 생긴 것이 멍청이라”, “여보소 이 사람, 자네 언행 못 고칠까” 등으로 바뀐 것이다. 기생에게조차 하대를 받아야 할 만큼 춘풍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것이다. 춘풍 개인의 추락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만 그 함의하는 바는 당시대 가부장권 상실의 형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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