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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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민족적 영웅 이야기 : [임진록](2)

장경남 쪽지

▣ 전쟁의 참상을 외면한 영웅주의와 사대주의

 

  전쟁은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임진왜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진왜란의 참상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놓기도 했다. 이 기록물에는 황폐화된 국토의 모습, 곳곳에 널려 있는 시체, 질병, 군량미 조달로 인한 식량부족, 사람들이 서로 잡아 먹는 상황으로까지 몰고 간 굶주림의 문제, 가족 간의 이별로 인한 고통, 피란민의 참상,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여성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일반 백성들은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받으며 전쟁을 겪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쟁을 통해 드러난 지배계층의 모순은 어느 정도 담고 있지만 전쟁의 참상과 백성들이 겪었던 처절한 고통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이 소설이 영웅 중심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지배계층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령, 김응서가 평양기생의 도움을 받아 왜장을 죽인 이야기는 지배계층인 남성 김응서의 행위만 드러내고자 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평양 기생은 이본에 따라 계월향, 월선, 화월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는 이본도 많다.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것은 남성 영웅 중심으로 이야기가 엮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양 기생은 김응서가 왜장을 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만약 평양 기생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김응서는 왜장을 물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김응서는 평양 기생의 도움으로 왜장을 죽이고 왜장의 머리를 들고 나오려고 했다. 경판본에는 평양 기생이 울면서 따라 나온 것으로 그렸다. 김응서는 차마 기생을 버리고 갈 수가 없어서 데리고 나오던 중 기생은 결국 왜장의 칼에 맞고 죽는다. 김응서가 왜장의 머리만 가지고 나오려고 한 것은 왜장의 머리는 자기의 공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생은 자기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다른 이본에는 김응서가 기생의 목을 베는 것으로 나온다. 김응서가 이렇게 기생보다는 왜장의 머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남성 위주의 조선시대에서 남성들에 의해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그리고 김응서가 왜장을 살해하고 돌아온 후에도 김응서의 행위만 칭찬할 뿐 평양기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평양기생의 행위와 존재가치가 전적으로 무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남성 중심적 사고에 의해 영웅 위주의 이야기로 엮어진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인 조선 시대라는 특수성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이다.

  [임진록]의 영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배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순신이다. 소설 속에 그려진 이순신의 정의로운 행동과 희생, 왜란에 대비하고 왜적을 물리치는 모습, 원균의 모함을 받아 위기에 빠지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 목숨을 바친 전투와 최후의 승리 등은 영웅의 전형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도 이순신은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민족의 영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임진록󰡕은 마치 ‘이순신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순신 이야기가 많으며, 동시에 이순신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조국을 구한 민족적 영웅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도 영웅화되어 있다. 이여송을 영웅화한 이면에는 사대주의적 시각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명나라에서 보낸 조승훈이 평양성 싸움에서 패배하고 돌아가자 조선 조정에서는 이덕형을 보내 다시 구원병을 요청한다. 명의 황제는 이여송을 보낸다. 명나라에서 구원병을 보내는 명분은, 자기 나라의 사정이 여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국의 큰 덕으로 오랑캐의 침입을 받은 조선을 구한다는 것이다. 이여송은 명 황제의 명령을 받고 조선으로 출정한다. 경판본에는 이여송의 출정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여송이 황제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대군을 지휘하여 조선으로 향했다. 군대의 앞에 선 깃발은 하늘을 가렸다. 북과 징소리를 일제히 울리자 그 소리가 산을 움직였고, 군대 행렬이 수십 리에 이어졌다. 사람은 마치 천신과 같고, 말은 마치 비룡과 같았다. 대군이 당당히 행군하여 연경을 지나 봉황성에 이르러 먼저 의주에 글월을 보냈다.

 

  이여송이 이끄는 구원병을 “사람은 마치 천신과 같고 말은 마치 비룡과 같았다”고 할 정도로 우월한 능력을 가진 집단으로 묘사했다. 명 황제가 구원병을 보내는 명분이나 이여송의 군대를 이와 같이 묘사하는 것은 명나라가 조선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대주의적 시각에 의한 것이다.

  이여송은 조선에 와서도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며, 다소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이여송은 구원병으로 조선에 와서 선조의 얼굴을 보자고 한다. 임금의 얼굴을 본 이여송은 왕의 기상이 없다고 하면서 임금이 아닌 사람을 임금이라고 속였기 때문에 군사를 되돌려 간다고 선언한다. 이에 이항복의 요청으로 임금은 통곡을 하고, 이 통곡소리를 들은 이여송은 왕의 울음소리라고 인정을 하고 군사를 머물게 한다. 임금을 보고 임금의 기상이 아니라는 것은 조선 임금을 부정하는 것으로 조선 임금에 대한 모멸과 치욕이다.

  명나라 구원병이 조선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실제 조선에 이르렀을 때에는 조선 조정의 신하와 백성들은 명나라 군대가 조선을 전란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영웅으로 여겼다. 이로 인해 칭송과 예찬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왜적과 똑같이 악행을 일삼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명나라 군사들이 조선 백성들에게 부린 행패는 역사 기록물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람과 말을 약탈하고, 지방 관원에게 횡포를 부리기도 하고, 사람들을 때려 중상을 입히는 등 갖은 악행을 일삼는 존재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횡포는 명나라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명나라 군사들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분노와 적대감은 점점 커졌는데, 명나라와의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를 겉으로 드러내 보일 수가 없었다. 소설 속에서 선조와 이여송이 펼치는 ‘대결’은 이러한 적대감과 부정적 인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왜적을 물리치고 임금과 잔치를 벌인 자리에서 선조와 이여송이 한 차례 대결을 펼친다. 우선 이여송이 계수나무 벌레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서 선조에게도 권한다. 선조는 차마 먹지 못하고 주저한다. 1차 대결에서는 선조가 패배한 것이다. 이때 이항복이 산낙지를 구해 와서 선조로 하여금 이여송에게 권하게 한다. 2차 대결인 셈이다. 이여송은 산낙지를 먹지 못한다. 2차 대결은 선조의 승리로 끝이 난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주목할 인물은 이항복이다. 이항복은 선조나 이여송을 능가하는 번득이는 기지를 발휘하여 선조를 승리하게 했다. 이항복의 행위는 이여송에 대해서는 민족적 대응의지를, 선조에 대해서는 무능한 왕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이여송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면모는 이후 전투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이여송은 평양성을 아주 손쉽게 얻는다. 왜적이 도망을 가서 비어 있는 성을 되찾은 것이다. 이후로 왜적을 추격하여 물리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후의 전투에서도 아주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여송이 조선에 구원병으로 나온 이후 보여 주었던 여러 가지 사건을 볼 때, 이여송은 부정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나라 구원병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또한 컸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록]은 이여송 개인의 비범한 면모를 그려내어 영웅화하고 있는 것도 또한 볼 수 있다. 특히 왜장이 보낸 자객을 맞아 싸우는 장면은 이여송을 신비한 능력을 갖춘 영웅으로 그린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현실의 한계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조선 사회에는 대국인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사대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더구나 임진왜란 후에는 ‘명나라는 은혜의 나라’ 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명나라를 섬기는 보수적인 시선이 여전히 조선사회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전쟁 당시 명나라 군대가 저지른 악행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를 나쁘게 평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대주의적 시각이 명나라를 부정할 수 없게 하고 여전히 이여송을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온 후에 이여송의 공로를 칭찬하고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는 장면이나, 이여송과 함께 명나라 황제가 있는 북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장면도 명나라에 대한 뿌리 깊은 사대주의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왜적인 평수길의 성장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비범한 모습들을 드러내는 이본도 있다. 굳이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그려낸 부분도 영웅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간 이 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소설 속의 수많은 영웅들이 펼치는 활약상에 박수를 치고 찬사를 보내며 통쾌해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고난을 겪은 민중들의 삶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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