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산책

1959

프린트하기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민족적 영웅 이야기 : [임진록](1)

장경남 쪽지

▣ 문학적 상상력으로 극복한 전쟁의 비극

 

  [임진록]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써 나간다면 읽는 재미는 반감이 된다. 이 소설은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면서 허구적 상상으로 만들어진 사건과 인물을 등장시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국왕 선조는 궁궐을 버린 채 피란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집을 잃고 떠돌아 다녔으며, 심지어는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가기도 했다. 명나라에서도 구원병을 보내어 힘을 쏟는 바람에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침략국인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는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막을 내리고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을 했다. 결국 임진왜란은 16세기말에 있었던 동아시아 전쟁이었던 셈이다.

  임진왜란이 우리 민족에게 가져다 준 울분과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이 받은 상처와 피폐하고 참혹했던 현실을 소설 속에서 통쾌한 승리로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임진록]이다. 일본의 침략으로 당했던 수모를 소설을 통해서나마 정신적으로 보상받고 싶었던 선조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임진록]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는 달리 이야기가 특정 인물의 생애를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이본에 따라 강조된 인물이 다르기는 해도 임진왜란 중에 영웅적으로 활약했던 많은 인물들의 활약상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소설이다. 이순신ㆍ곽재우ㆍ김덕령ㆍ강홍립, 김응서ㆍ 사명당 등 임진왜란 당시 우리 민족의 영웅이었던 인물들의 일화와 전쟁 중의 활약상이 때로는 사실 그대로, 때로는 상상력을 통해 과장되거나 변형되어 그려져 있다. 이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영웅 한두 명의업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국 곳곳의 수많은 의병장과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민중들이 겪은 체험과 장수들의 활약상은 단편적인 이야기로 구전되기도 하고, 문인들에 의해서 기록으로 남겨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내용이 과장되거나 허구적 요소가 가미되어 설화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임진록]이 탄생했고, 다양한 이본이 생겼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임진록]의 이본을 헤아려 보면 약 70여 편에 이른다. 표기수단에 따라 한문본과 국문본으로 나누는가 하면, 내용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것과 허구적 성격이 강한 것,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내용을 결합한 것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여러 이본 가운데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경판본이다.

 

▣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의 절묘한 짜임

 

  고전소설 가운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등을 소재로 한 것을 역사소설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임진록]은 임진왜란 중에 활약했던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등장시켜 사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실제 인물이지만, 이들의 활약상은 역사적 사실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있는가 하면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도 있고, 이 둘을 적절하게 섞은 것도 있다. 이렇게 일부러 꾸며낸 이야기의 숨은 뜻을 헤아리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면 몇몇 주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비극적 영웅 김덕령을 보자. 역사 속의 김덕령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성 가운데 무엇이 우선인지를 놓고 갈등을 하다가 의병을 일으킨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의병을 일으킨 후에는 권율 장군에게 초승장군이라는 칭호를 받고, 조정으로부터는 충용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아서 의로운 기상이 큰 인물로 알려졌다. 김덕령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아서 조정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의병장 곽재우와 협력하여 여러 차례 왜적을 격파하였다. 그러던 중 명나라가 일본과 강화협상을 하기 시작했고, 조정에서는 전투 중지령을 내렸다. 왜적을 눈앞에 두고도 싸우지 못하자 김덕령은 울분으로 괴로워했다. 군사들의 사기도 떨어졌고, 기강도 많이 해이해졌다. 김덕령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엄하게 군사를 다스리던 중 조정 대신이었던 윤근수의 노비를 잡아 처형했다. 이에 체포되었다가 왕의 명령으로 겨우 풀려난 후에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과 싸웠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때부터 김덕령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충청도에서 이몽학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 김덕령은 반란군을 토벌하러 가다가 반란군이 이미 관군에 의해 진압된 것을 보고 도중에 돌아오고 만다. 이 사건으로 김덕령은 이몽학과 내통하였다는 모함을 받아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옥중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편 소설 속에서 김덕령이야기는 간단하게 서술되었다. 김덕령은 아버지 초상중에 있다가 왜적의 침입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터에 나가려는 것을 어머니가 만류하자, 잠깐 왜적을 구경하고 오겠다고 속이고 출전을 한다. 그러고는 왜장 청정의 진에 들어가 왜적을 혼내주어 스스로 군사를 거두어 달아나게 한다. 그러나 청정의 진중에 출입했다는 이유로 왜적과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아 붙잡히고 만다. 김덕령은 임금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곤장을 맞지만 죽지 않고, ‘만고충신 김덕령’이라는 글귀로 현판을 새겨주면 죽겠다고 말한다. 임금이 이를 허락하고 현판을 새겨 주자, 김덕령은 그때서야 숨을 거둔다.

  역사에 기록된 것보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숨은 뜻은 결코 가볍지 않다. 김덕령이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는다는 것은 역사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김덕령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차이가 난다. 소설 속에서 김덕령은 자신에게 ‘만고충신’이라는 칭호를 내려달라고 요청한다. 임금은 오로지 김덕령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김덕령의 요청을 들어준다. 여기서 임금은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만다. 스스로 충신이라고 인정했던 김덕령을 자신의 손은 죽인 셈이다. 즉 김덕령은 억울하게 죽은 충신이 되었고 임금은 충신을 죽인 어리석은 임금으로 변모된 것이다. 실제로 큰 활약을 하고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덕령을 안타까워한 민중들은 소설을 통해 지배계층의 횡포와 비리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 김덕령을 비극적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김응서와 강홍립 이야기와 사명당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로 일본에 대한 적대감 또는 복수의지의 표현이라는 숨은 뜻을 갖고 있다. 김응서와 강홍립은 실제 인물로 명나라가 후금(후에 청나라)을 무찌르려고 조선에 군사를 요청했는데, 이때 명나라에 원정을 갔다. 그러나 이들은 패배하여 오랑캐(후금)에게 항복을 한다. 강홍립은 나중에 조선을 공격하는 장수가 되어서 조선으로 오지만, 김응서는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몰래 오랑캐의 사정을 일기에다 써서 조선으로 보내려다가 강홍립에게 들켜 죽고 만다. [임진록]은 이를 두 인물이 일본을 원정하는 이야기로 바꾸어, 일본에 대한 복수심을 표현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 일반 민중들은 강홍립을 오랑캐 나라에 항복한 의리 없는 인물로 부정적 평가를, 김응서는 항복한 후에도 오랑캐의 사정을 조선에 알리는 의리 있는 긍정적 인물로 평가를 하였다. 그 결과가 소설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

  일본 원정에 앞서 김응서에게는 신이 나타나 잠시 머물렀다가 출정하라는 계시가 내려진다. 김응서를 좋게 보았기 때문에 신도 도와준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에 가서는 왜왕이 제안한 화친을 거부하고, 결국은 강홍립을 죽이고 자신도 죽어 충절을 잃지 않는 긍정적 인물로 그려졌다. 이에 반해 강홍립은 김응서의 요청을 무시하고 행군을 재촉했다가 일본의 복병을 만나 모든 군사를 죽게 한 무능력한 패배 장수로 그려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왜장을 보고 두려워하는 나약한 장수로, 또 왜왕의 화친에 응하는 변절의 인물로 그려졌다. 이로 인해 충절을 지킨 김응서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설정을 하였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사명당도 임진왜란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인물이지만 소설 속의 활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상의 인물 사명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려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에 저항하였으며, 왜장 가등청정을 세 차례나 방문해 화해의 담판을 하였고, 60세에는 임금의 편지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덕천가강을 만나서 강화를 맺고 임진왜란 때 잡혀온 포로 3천 여명을 데리고 귀국한다. 소설 속의 사명당은 결말부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데, 그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거나 신의 도움으로 인하여 왜왕의 항복을 받아오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사명당이 왜왕의 항복을 받는 이야기는 김응서와 강홍립의 일본 원정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적대감 또는 복수의지의 표현이라는 숨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명당이 결국 왜왕에게 항복의 문서를 받아 오는 것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김응서ㆍ강홍립이야기에서 보여 주었던 일본에 대한 복수의지가 더욱 강하다고 하겠다. 이것은 사명당의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야기의 밑바탕에는 일본보다 조선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도 담겨 있다고 하겠다.

  사실 사명당의 일본에서의 행적은 알려진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특히 소설의 끝 부분에서는 왜왕의 항복을 받아 귀국한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거의 모든 이본에 등장하는 내용이며 허구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것이다. 소설 속의 사명당은 왜국에 들어가 왜왕의 시험을 받는다. 그 내용은 이본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일만 팔천 칸의 병풍에 쓴 시 외우기, 승당 연못에서 유리(또는 구리)방석 타고 앉기, 불에 달군 무쇠(또는 구리)방에 앉아서 견디기, 백목ㆍ비단 방석을 가려 앉기, 불에 달군 철(또는 구리, 무쇠)마 타기 등이다. 사명당은 왜왕의 이와 같은 시험을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다 극복해내고 급기야 왜왕에게 항복을 받고 돌아온다. 이 이야기는 허구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이본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사명당의 왜왕 항복 이야기는 사명당의 비범한 능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왜왕에게 항복의 문서를 받아냄으로써 일본에 대한 강한 적대감과 왜란에서 받은 피해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현실적인 패배에 대한 정신적인 승리의 숨은 뜻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계속)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27 조선조 연행사의 ‘천주당’ 견문기(2)
2012.06.14. 1326
26 조선조 연행사의 ‘천주당’ 견문기(1) [1]
2012.06.07. 1382
25 가부장권의 상실과 회복의 서사 : <이춘풍전>(2)
2011.08.26. 1850
24 가부장권의 상실과 회복의 서사 : <이춘풍전>(1)
2011.08.18. 1757
23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민족적 영웅 이야기 : [임진록](2)
2011.08.11. 1747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민족적 영웅 이야기 : [임진록](1)
2011.08.04. 1960
21 병자호란의 치욕, 허구적 상상으로 극복한 [박씨전](2)
2011.07.28. 2081
20 병자호란의 치욕, 허구적 상상으로 극복한 [박씨전](1) [1]
2011.07.21. 2593
19 수성지(2) : 정의로운 역사를 위하여
2011.01.05. 2101
18 수성지(1) : 역사에 천도가 있는가?
2010.12.21. 2412
17 소대성전(2) : 하층 '민'의 가능성과 저력
2010.12.08. 2354
16 소대성전(1) : 잠꾸러기 거지 영웅의 성공담
2010.12.01. 2792
15 조웅전(2) : 유교적 이념의 복원 혹은 해체의 징후
2010.11.17. 2265
14 조웅전(1) : 조선 후기 최고(?)의 인기 소설
2010.11.10. 2640
13 유충렬전(2) : 고난 그리고 가족애 [1]
2010.11.03. 2377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