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산책

2080

프린트하기

병자호란의 치욕, 허구적 상상으로 극복한 [박씨전](2)

장경남 쪽지

박씨의 잠재된 능력, 가정에서 국가 차원으로

 

  [박씨전]은 전반적으로 병자호란의 패배에서 오는 치욕을 소설적 상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의 힘과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씨의 능력은 일단 가정에서 발휘되고, 점차 국가 차원으로 확대된다. 소설 전반부는 가정 내 갈등을 다루고 있다. 주된 갈등은 박씨와 이시백과의 갈등이다. 외모가 못생긴 박씨를 며느리로 맞아들였기에 빚어진 갈등이다. 못생긴 외모로 인해 시어머니가 멸시하고, 남편 시백은 겉돌기만 하고, 하물며 비복들까지 박대하여 박씨는 수난을 당한다. 가정 내 갈등으로 박씨는 후원에 피화당을 짓고 숨어 지낸다. 박씨가 피화당에 거처하는 것은 허물을 벗기 전까지 주인공이 겪는 시련의 과정으로 격리나 소외를 의미한다. 동시에 피화당이라는 공간은 박씨가 영웅적인 존재로 재탄생하는 공간이자 오랑캐가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을 의미한다. 박씨는 남편과 떨어져 이곳에 머물면서 서서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여성은 가정의 일에 전념할 뿐 그 밖의 사회적인 일에는 전혀 간섭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성이 자신의 성취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자손의 출산과 양육으로만 가능하였다. 그들은 가문을 계승할 아이를 낳고 아이의 성장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였다. 이로써 여성이 담당해야 할 사적 영역인 가정은 일차적으로 사회적인 일에 종사하는 남성의 편안한 휴식처로서의 역할, 사회로 진출하기 전 남성을 훈련하는 장소로의 역할을 담당했다. 사실상 조선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이란 바로 이러한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인물이었다. 박씨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 조선조 여성이었다. 박씨가 보여준 능력은 모두 남성이나 가정을 위한 것이었다. 바느질을 잘해서 임금께 선물을 받는다든가, 재산을 늘리기 위해 말을 길러 판다든가, 남편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돕는 등 주로 가정 내에서 여성이 해야 할 몫이었다. 박씨는 가정 내에서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가정 내에서 박씨의 일은 이시백이 벼슬에 오르면서 마무리된다. 시백이 과거에 급제하자 박씨는 아버지 박처사를 만난다. 그러고는 허물을 벗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다. 가정 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수난을 받던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이어서 허물을 벗고 미모의 얼굴로 변하는 것은 여성성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성의 긍정은 가정 내 갈등 해소로 이어진다. 남편 이시백과 화목하게 지내게 되면서 가정 내 질서는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변신'의 장면이다. 박씨의 변신은 작품의 구성상 사건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박씨의 변신은 자신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확대시키는 계기가 된다. 변신한 박씨는 남편을 비롯한 시집식구들과 다른 사대부 부인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따라서 박씨의 변신은 다른 세계에 편입하는 입사식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작품의 후반부는 병자호란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극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박씨의 영웅적 활약과 병자호란의 굴욕적 패배를 설욕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박씨는 피화당에 머물면서 하루는 천기를 보고 오랑캐가 침입할 것을 예견한다. 그래서 남편 시백으로 하여금 임금께 아뢰게 한다. 그러나 김자점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결국 조선은 오랑캐의 침범을 받고, 급기야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란을 갔다가 항복을 하고 만다. 오랑캐에게 패배한 사건 전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피화당에서의 박씨의 행동은 외부에서의 패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랑캐에게 패배하지 않고 오히려 오랑캐 장수를 무찔러 승리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남성들이 지키지 못하고 손상당했던 국가의 자존심을 박씨라는 여성이 되찾은 것이다. 이를 통하여 민족의식의 각성이나 당대 정치상황의 비판이라는 주제를 찾아낼 수 있다.

  피화당에 침입한 용울대 형제는 오랑캐를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용울대의 동생 용골대는 피화당에 잘못 들어갔다가 죽음을 당했다. 피화당에 심었던 나무들이 군사가 되고, 가지와 잎은 무기가 되며, 피화당 전체는 첩첩 산중으로 되는 등 박씨의 도술과 조화로 용골대는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용골대는 오랑캐를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되었는데 그를 죽인 것은 다름 아닌 오랑캐에 대한 복수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생의 원수를 갚으려고 온 용울대는 겨우 목숨을 구하고, 오히려 박씨의 훈계를 듣고 물러난다. 용울대는 뒤에 임경업에게도 곤욕을 치르나 죽지는 않는다. 객관적으로 보아 박씨의 초능력과 임경업의 능력으로 용울대는 충분히 제거할 수는 있었을 것이나, 소설 속에서는 천의를 거역하지 못하여, 또는 왕명을 거역하지 못하여 살려 보낸다고 하였다. 이는 오랑캐의 승리라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에 이유가 있다. 박씨의 도술로 오랑캐를 퇴치하고 응징하는 설정은 가능했겠지만, 결국 역사적 사실까지 뒤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편 용골대를 잡아 죽이면서 박씨의 하녀 계화는 천의를 모르고 예의지국을 침범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천의, 즉 하늘의 뜻은 오륜을 말하는 것이다. 오륜을 모르고 예의지국을 혼란에 빠뜨렸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오륜에 의거한 질서 있는 사회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가 이렇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박씨가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 내자 왕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뉘우친다. 그리고 조선의 정기를 새롭게 한 인물이니 박씨에게 상을 내린다고 한다. 병자호란을 맞아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지배계층의 남성들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박씨를 칭송하는 것이다. 박씨는 무너져 가는 국가의 기강을 되살린 영웅으로 받들어진 것이다. 이는 유교적 도덕관념인 충의 실천으로써 가능하였다. 허물을 벗기 이전의 활동은 가정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었고, 전쟁을 통해 영웅적 능력을 발휘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것은 사회 국가적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이 소설은 창작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사대부 가문의 여성 독자에게 애호를 받아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박씨전]에 그려진 여성 영웅의 활약의 이면에는 유교적 관념을 보다 확고하게 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큰 전쟁을 겪은 이후 조선 사회는 급격하게 문란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지배층에서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사회질서를 재정비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 방편으로 내세운 것이 이른바 삼강오륜의 강화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유교 이념의 강화는 필수였던 것이다. 여성 독자들의 욕구를 여성 영웅의 활약을 통해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단속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패배를 설욕하면서, 작품의 바탕에는 가정의 질서와 국가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상적인 전통사회의 여성상을 부각시키며 결말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결국 [박씨전]은 지배 권력의 실패는 외면한 채 성리학적 질서를 옹호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 수난을 다루었고, 수난의 극복 과정에서 가정ㆍ사회ㆍ국가 질서의 확립 또는 옹호를 낭만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더할 수 있겠다.

 

췌언 : 밤새 내린 폭우로 인해 수도 서울이 물에 잠겼다. 그것도 부의 상징인 강남 한복판과 그 주변 지역이.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외양 치장에만 매달리던 위정자들. 그들은 수해 현장의 시민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논리로 수해를 당한 시민들을 위로할까 자못 궁금하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27 조선조 연행사의 ‘천주당’ 견문기(2)
2012.06.14. 1326
26 조선조 연행사의 ‘천주당’ 견문기(1) [1]
2012.06.07. 1382
25 가부장권의 상실과 회복의 서사 : <이춘풍전>(2)
2011.08.26. 1849
24 가부장권의 상실과 회복의 서사 : <이춘풍전>(1)
2011.08.18. 1757
23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민족적 영웅 이야기 : [임진록](2)
2011.08.11. 1747
22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민족적 영웅 이야기 : [임진록](1)
2011.08.04. 1959
병자호란의 치욕, 허구적 상상으로 극복한 [박씨전](2)
2011.07.28. 2081
20 병자호란의 치욕, 허구적 상상으로 극복한 [박씨전](1) [1]
2011.07.21. 2593
19 수성지(2) : 정의로운 역사를 위하여
2011.01.05. 2101
18 수성지(1) : 역사에 천도가 있는가?
2010.12.21. 2412
17 소대성전(2) : 하층 '민'의 가능성과 저력
2010.12.08. 2354
16 소대성전(1) : 잠꾸러기 거지 영웅의 성공담
2010.12.01. 2792
15 조웅전(2) : 유교적 이념의 복원 혹은 해체의 징후
2010.11.17. 2264
14 조웅전(1) : 조선 후기 최고(?)의 인기 소설
2010.11.10. 2640
13 유충렬전(2) : 고난 그리고 가족애 [1]
2010.11.03. 2376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