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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지(2) : 정의로운 역사를 위하여

김현양

사마천의 대답

일찍이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부귀(富貴)라는 것이 뜻대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마부(馬夫)와 같은 천한 직업이라 할지라도 나는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도(道)를 행하고 덕(德)을 쌓겠다.


군자(君子)는 세상을 마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이다.


부귀가 뜻대로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은 현실에서의 성취가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추구해야 할 목표란 무엇이겠습니까? 공자는 이에 대해 그것은 현실에서의 성취 여부가 아니라 현실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의 의미와 가치, 곧 도(道)와 덕(德)으로 표상되는 역사적․윤리적 정당성이라 대답합니다. 천도는 개인에게 현재적인 보상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역사적인 의미로서 구현되는 것이며, 따라서 보다 가치 있는 삶은 이러한 역사적 의미로서 후대에 평가되고 기려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와 천도의 어그러짐에 대해 비장하게 질문했던 사마천이 자신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대답한 것도 역시 공자의 해법대로였습니다.


백이․숙제가 현인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그 이름이 더욱더 드러났고, 안연은 독실한 선비이지만 공자의 덕으로 그 덕행이 더욱더 드러났다. 이와 같이 암굴(暗窟)에 숨어 사는 덕이 높은 선비가 그 진퇴에 시운(時運)이 맞았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 묻혀 칭송되지 못하는 수가 많은 것은 슬픈 일이다. 촌리(村里)에 살면서 행실을 닦고 이름을 떨치고자 하더라도 공자와 같은 성현의 덕으로 칭송되지 않는다면, 어찌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 있겠는가.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 그리고 안연이 공자의 평가에 의해 역사 속에서 기려지게 된 것을 주목합니다. 궁형(宮刑)을 당하는 치욕과 고난 속에서 󰡔사기󰡕의 저술을 완성한 저력의 바탕이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역사의식의 소산이었을 것입니다.


임제의 대답

그렇다면 임제는 어떠했을까요? 임제는 「수성지」에서 공자나 사마천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줍니다. 공자와 사마천의 해법대로라면, 천군이 수성에서 목도했던 불우한 역사적 인물들은 애도의 대상만은 아닙니다. 그들의 현실적 삶이 불우하고 기구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들의 불우하고 기구한 삶에 대해 일시적인 애도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들은 역사 속에서 칭송되고 기려져야 할 인물이며, 실제로 칭송되며 기려지고 있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군의 수심(愁心)은 그들의 개인적인 불우(不遇)만에 집착하고 있는 감상적 태도에 불과한 것이며, 그렇기에 수심은 그들의 역사적․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확인과 추앙으로 대체되면서 자연스럽게 소진(消盡)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성지」에서, 천군의 수심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소진되지 않습니다. 천군은 관성자를 통해 수성의 기록을 받아보고는 시름을 이기지 못한 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침묵과 고민에 싸여 우울하게 보낼 뿐이었으며, 마침내 천군의 수심은 주인옹의 천거에 의해 등용되는 국양장군에 의해 수성이 격파됨으로써 사라지게 됩니다. 국양장군은 술의 의인화된 형상이니, 수심을 사라지게 하는 방도로 선택된 것은 결국 술이었던 것이다.

앞서 「수성지」에서 제기하고 있는 임제의 질문이 비록 우회적인 수법으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쉽게 파악될 수 있다고 했는데, 질문에 대한 임제 자신의 대답은 그 질문보다도 오히려 더 간명합니다. 역사적 개인의 불우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초래된 근심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술로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처럼 간단명료한 대답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적 언표만으로 임제의 대답을 단순화시키는데 머물고 말 일은 아닙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사마천과 임제가 제기했던 ‘역사(歷史)에 천도(天道)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상기해 봅시다. 사실 공자와 사마천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공자와 사마천은 천도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인물이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며, 이러한 인물의 역사적․윤리적 정당성을 후대에 확인해주는 일이 긴요하다고 대답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불우를 감내한 이러한 인물에 의해, 이러한 인물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후대의 평가에 의해 역사와 천도는 서로 행복하게 결합되었나요? 이러한 질문에 회의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면 ‘역사에 천도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임제는 「수성지」에서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수성에 불러 모았습니다. 이들은 여러 시대, 여러 왕조의 인물들이며, 역사의 진행 속에서 마찬가지의 불우를 경험해야 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만일 역사에 천도가 있다면 이러한 불우는 반복되지 말아야 합니다. 천도를 구현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가 역사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동되었더라면, 그들의 불우는 진정 행복한 추앙으로 귀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임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역사 속에 관념으로서의 천도와 이를 추구하고자 하는 인물이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와 천도가 행복하게 결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는 천도와 어긋나 그것대로 흘러가면서 불우는 무한의 순환에 빠져드는 것이 존재의 본질이며, 그렇기에 역사 앞에서의 근심을 술로 달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정의로운 역사를 위하여

역사 앞에서의 근심을 술로 달래고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자는 임제의 생각은 한편으로는 직설적인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인 것이었습니다. 역설적이라는 것은 공자나 사마천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의 의인을 추앙하고 환기하고자 하는 의도가 그 배면에 강렬히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며, 직설적이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진행은 천도의 구현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전(假傳)의 희필(戱筆)적 문체를 이어받아 마치 장난처럼 쓰여진 것 같은 「수성지」의 세계를 경험한 독자가 오히려 비관적 정조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이 같은 솔직한 토로에 내재되어 있는 심중한 의미의 무게를 떨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임제는 천도는 역사와 무관하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임제의 선언으로 인해 천도는 역사에 개입해 그 시비를 가리고 보상해 주는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중세인이 꿈꾸었던 천도가 공동선(共同善)을 지향하는 정의로움의 상징이었다면 이제 그 상징은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천도에 의지해 힘을 얻기도 하고 좌절하고 우울해 하기도 했던 인간은 이제 그 스스로 홀로 서야 합니다. 역사의 정의는 오직 보상에의 어떠한 기대와도 상관없는 인간의 현실적․자각적 결단의 몫이며, 그만큼 인간은 고독해졌습니다. 그 고독이 너무나도 힘겹기에 임제는 스스로를 술로 위로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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