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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지(1) : 역사에 천도가 있는가?

김현양

  「수성지」와 임제(林悌)

조선 중기의 자유방달(自遊放達)한 문인 임제(1549-1587)는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던 인물들에 대한 소회(所懷)를 한 편의 이야기로 남겼는 바, 「수성지(愁城誌)」가 그것입니다. “북평사로부터 서평사로 옮길 적에 어사(御使)의 전도(前導)를 일부러 범하여 탄핵당하였다. 「수성지」를 지어 평생동안 기이하고 큰 일이 많았음을 보이었다(自北評換西評, 故犯御使前導見劾, 著愁城誌, 以自平生奇偉事甚多)”는 택당(澤堂) 이식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임제는 상도(常道)에서 벗어난 기행(奇行)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조롱했던 인물이었으며, 「수성지」는 기행의 대가로 치루게 된 고난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임제는 「수성지」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천도(天道)에 대한 저 유명한 사마천(司馬遷)의 질문으로부터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질문

[사기(史記)]를 저술한 저 유명한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은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천도(天道)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하지만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인가. 그들은 이와 같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이렇게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의 고제(高弟) 70인 가운데 중니(仲尼)는 오진 안연(顔淵)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했다. 그러나 회(回)는 가끔 쌀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일까.

한편 도척(盜跖)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肝)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하여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으나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이것은 그가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이러한 것은 가장 현저한 예라 하겠지만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素行)이 도(道)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종신토록 일락(逸樂)하여 부귀가 자손대대로 끊이지 않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길을 걸으며, 공명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災禍)를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매우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천도라는 것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고.


천도의 유무(有無)를 묻는 사마천의 질문은 자못 비장합니다.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역사 속에서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하는데, 왜 안연의 삶은 고달프고 도척의 삶은 안락한 것일까요?


임제(林悌)의 질문

임제도 「수성지(愁城誌)」에서 사마천과 마찬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그렇지만 임제의 질문법은 사마천과는 달리 직설적이지 않고 우회적입니다. 서사적인 이야기를 창안하여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을 통해 자신의 질문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우회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의인화(擬人化)한 것도 우회적인 수법이라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우회적으로 질문한다고 해서 질문 자체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전고(典故)나 고사(故事)를 해득할 수 있는 소양이 있다면 「수성지」의 질문은 너무나도 쉽게 파악됩니다.

「수성지」의 서사세계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천군(天君), 무극옹(無極翁), 주인옹(主人翁), 애공(哀公), 감찰관(監察官), 채청관(採聽官), 관성자(管城子), 국양장군(麴襄將軍) 등입니다. 천군은 마음[心]의 의인화된 형상으로서 제왕(帝王)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며, 무극옹은 우주의 시원적인 원리가 의인화된 인물이고, 주인옹은 마음이 거주하고 있는 주체를 의인화한 인물입니다. 무극옹은 천군이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필하는 인물이며, 주인옹은 천군이 동요하거나 평정을 잃을 경우, 천군에게 간언하여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인물입니다. 애공은 슬픈 마음의 의인화된 형상이며, 감찰관과 채청관은 각각 눈과 귀의 의인화된 형상으로, 천군으로 하여금 외물(外物)에 관심을 갖고 반응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외물에의 반응은 곧 천군의 동요를 야기하는 요인이므로 감찰관, 채청관 등은 무극옹, 주인옹과 대립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대립적 관계에 대한 인식이 주인옹의 상소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신으로 말하자면 정(情)은 골육보다 깊고 의(義)는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처지옵니다. 어찌 위태롭고 어지러워질 사태를 예견하고서도 앉아서 바라보며 무심히 넘기오리까? 현실을 논란하고 과거를 애달파하는 것은 존심(存心)하는 데 보탬이 없거니와, 먹을 갈아서 붓대를 휘두르는 것이 양성(養性)을 하는 데 무슨 유익함이 있사오리까? 대개 인․의․예․지 중에서 오직 수오(羞惡)가 일을 벌이고 시비(是非)가 논의를 주장하는 한편, 밖으로 감찰관과 서로 통하여 주제넘게 비분강개해서 저만 잘난 체하고 저만 고상한 체하는 태도는 심히 나라를 안정케 하는 방도가 아닌 것입니다.


주인옹은 천군이 항상 죽백[史書]을 가까이 하여 놀고 고금(古今)을 노래하는 데 뜻을 두자 위와 같이 상소합니다. 현실을 논란하고 과거 역사를 들추어 보아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의 무용함을 주장하며, 감찰관 등이 이를 부추긴다고 비난합니다.

주인옹의 이러한 노력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천군이 결정적으로 동요하게 되는 계기는 수성(愁城)의 축성(築城) 때문입니다. 어느날 초나라 양왕에 의해 추방당해 자결해 죽은 굴원(屈原)은 그의 제자 송옥(宋玉)을 데리고 천군에게로 와 성을 쌓고 거처하도록 허락할 것을 요청합니다. 천군은 이를 허락하게 되고 드디어 천군의 지경(地境)에 수성이 자리잡게 되는데, 이로 인해 천군은 평정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수성의 축성에 왜 천군이 동요하는 것일까요?


그해 가을 9월에 천군은 몸소 바닷가로 나가 성 쌓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오직 수만 가닥의 원통한 기운과 몇천 겹의 시름의 구름이 쌓여, 옛날의 충신 의사나 억울하게 화를 당했던 사람들의 처절하고 낙백(落魄)한 모습들만 그 사이로 오락가락 하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진나라 태자 부소(扶蘇)가 있어 일찍이 만리장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였던 터이므로 그가 몽염(蒙恬)과 함께 형곡(硎谷)에서 생매장을 당했던 유생(儒生) 4백여 명을 동원하여 공사를 하니 급히 서둘지 않고도 며칠 안에 완성이 되었다. 이 성을 쌓는 데 있어서는 흙과 돌을 번거롭게 사용하지 않았으니 역사(役事)를 하는데 돌을 굴려오고 흙을 실어 나르는 등의 수고로움 또한 들지 않았다. 성의 규모는 크다고 보면 붙여 있는 자리가 너무도 좁고, 작다고 보면 그 안에 포괄된 것이 너무도 많다. 없는 것 같은데 있고 형체를 이루지 않았는데 형체가 있다. 북으로는 태산(泰山)을 웅거하고 남으로는 바다에 연결되었으며, 지맥은 정히 아미산(蛾眉山)으로부터 내려와서 울뚝불뚝 굉장하여 시름과 원한이 온통 모여든 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수성(愁城)’이라고 이름 붙였다.


성을 쌓는 그곳에는 “수만 가닥의 원통한 기운과 몇천 겹의 시름의 구름이 쌓여” 있다고 했으며, “옛날의 충신 의사나 억울하게 화를 당했던 사람들의 처절하고 낙백한 모습들만 그 사이로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바로 그곳에 쌓은 성은 “시름과 원한이 온통 모여든 곳”인 ‘愁城’ 곧 ‘시름과 근심의 성’이었던 것이며, 그렇기에 천군은 처연(悽然)히 동요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천군이 평정심을 잃고 동요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앞서 사마천이 비장하게 제기했던 역사(歷史)와 천도(天道)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우회적 표현에 다름 아닙니다. 사마천이 공자의 훌륭한 제자였던 안연의 불행(不幸)과 악행만을 일삼았던 도적(盜賊) 도척의 행(幸)에 당혹스러워 했던 것처럼, 천군 역시 의인(義人)의 역사적 불행에 대해 애도(哀悼)하고 있습니다. 수성 안의 네 개의 문 ― 충의문(忠義門), 장렬문(壯烈門), 무고문(無辜門), 별리문(別離門) 안에 있던 수 많은 충신(忠臣), 지사(志士), 영웅(英雄), 의인(義人), 열사(烈士)의 원통한 죽음과 그들을 목도(目睹)한 천군의 슬픔. 이는 바로 천도(天道)의 구현이라 여겨졌던 역사(歷史)에 대한 심중한 회의(懷疑)의 표출이 아니겠습니까! 천군이 수성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을 관성자[붓]로부터 받아보고는 “시름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침묵과 고민에 싸여 우울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였던 것입니다.

「수성지」에서 뿐만 아니라 「원생몽유록」에서도 임제는 역사와 천도의 모순에 대해 지적한 바 있습니다. 「원생몽유록」에서 임제는 몽유자(夢遊者) 원자허(元子虛)의 꿈속 체험을 통해 세조(世祖)에 의해 죽음을 당해야 했던 단종(端宗)과 사육신(死六臣)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인시킨 후, 외사씨(外史氏)의 평결(評決)에서 해월거사(海月居士)의 목소리를 빌려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대저 예로부터 임금이 어리석고 신하가 어두워 마침내 나라를 망치는 지경에 이른 일이 많았다. 지금 보니 그 왕[단종-필자]도 틀림없이 현명한 임금으로 생각되고 그 여섯 사람[사육신-필자]도 역시 다 충의(忠義)의 신하였다. 어찌 이와 같은 신하들이 이러한 임금을 보필하였는데 이와 같이 참혹한 일이 있을 수 있으랴! 아아! 형세(形勢)가 들어 그렇게 만들었던가? 시기(時機)가 들어 그렇게 만들었던가? 아무래도 시기와 형세에 돌리지 않을 수 없으며, 그리고 또한 하늘에 돌리지 않을 수 없도다. 하늘에 돌리고 보면 착한 자를 복되게 하고 악한 자에게 화를 내리는 것이 천도가 아니더뇨. 무릇 하늘에 돌릴 수 없다고 친다면 어둑하고 아득하니 이 이치는 알기 어렵도다. 우주는 유유한데 한갓 지사(志士)의 한만 돋울 따름이로다.


현군(賢君)과 충신(忠臣)을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 역사의 궤적. 이것은 착한 자를 복되게 하고 악한 자에게 화를 내리는 천도의 구현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천도와 역사의 어긋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수성지」에서 임제가 심중하게 제기하고 있는 역사철학적 질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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