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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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전(1) : 조선 후기 최고(?)의 인기 소설

김현양

 우리나라 고전소설 가운데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작품은 무엇일까요? 요즘 사람들에게 기억나는 고전소설 작품을 말해 보라고 하면 <홍길동전>, <춘향전> 등을 우선 얘기합니다. <홍길동전>이나 <춘향전>과 같은 작품은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접하기 이전부터 동화 또는 만화로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된 후에도 TV 드라마나 영화로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즘 사람들에게 <홍길동전>, <춘향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고전소설이 가장 활발하게 창작되고 읽혀졌던 조선 시대 사람들도 그랬을까요?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도 역시 <홍길동전>과 <춘향전>은 매우 인기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홍길동전>과 <춘향전>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조웅전>입니다.


<조웅전>이 인기 있던 작품이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설이 널리 읽히게 된 것은 조선 후기, 즉 18-19세기에 와서입니다. 이 시기에 오면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종이에 찍어 만든 소설책이 시장을 통해 유통되는데, 이를 방각본 소설이라 합니다. 방각본으로 간행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인기 있던 작품이라는 증거인데, <조웅전>은 방각본으로 여러 차례 간행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고전소설 가운데 방각본으로 출간된 소설책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작품이 <조웅전>인 것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방각본의 수만으로 당시의 인기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부정확하고 어쩌면 부질없는 일이지만, <조웅전>이 당시의 독자들에게 크게 주목받던 작품임은 이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글로 쓰여진 대다수의 고전소설이 그렇듯이 <조웅전> 또한 작자가 누구인지, 언제 창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해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 어름에 지어진 작품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조웅전>과 그 성격이 비슷한 작품이 대단히 많이 창작되는데, 1794년에 일본인 야마다(山田士雲)가 쓴 『상서기문(象胥記聞)』에 이러한 작품들이 언급됩니다. <조웅전>을 직접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웅전>과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 거명되고 있다는 사실은 <조웅전>과 같은 작품이 창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또한 현재까지 남아 있는 방각본 소설책들이 간행된 시기를 따져 보아도 대체로 18세기 후반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이로 볼 때 <조웅전>의 창작 시기를 대체로 18세기 후반의 앞 뒤, 즉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독자들이 <조웅전>을 그토록 애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조웅전>의 창작 시기를 언급하면서, 조선 후기에 <조웅전>과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 많이 창작되었다고 했는데, 이러한 작품들을 ‘군담소설’ 또는 ‘영웅소설’이라 합니다. <조웅전>을 비롯하여 군담소설의 유형에 속하는 많은 작품들을 당시의 독자들은 어떤 다른 유형의 작품보다도 즐겨 읽었습니다.

군담소설은 군사적인 대결을 이야기의 중심적인 내용으로 서사화하고 있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합니다. 군담소설은 군사적인 대결을 중심적인 내용으로 서사화하되, 군사적인 대결을 벌이는 두 주체는 반드시 중국과 중국 변방의 오랑캐 나라입니다. 군담소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중국과 그 주변 나라 사이의 국가적인 갈등을 중심적으로 서사화하기 위함입니다. <조웅전>에서는 이러한 군사적인 대결이 황제의 나라인 송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제후국인 위나라와, 위나라를 침공한 서번과의 싸움으로 그려집니다. 조웅의 스승인 천관도사는 어느 날 제자인 조웅을 데리고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서번의 침공을 알리며 조웅에게 세상으로 나갈 것을 명합니다. 조웅은 말을 몰아 전장으로 달려가 서번왕에게 항복하는 위왕을 구하고 서번의 군대를 물리칩니다.

군담소설에서 군사적인 대결은 중국과 오랑캐 사이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황제에 반역하여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역신과 황제를 지키고자 하는 충신 사이에 벌어지는 군사적인 대결 또한 군담소설의 중심적인 내용을 이룹니다. 황제가 죽자 태자를 귀양보내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 이두병과 이두병에 맞서 영웅적 대결을 벌이는 조웅은 <조웅전>에서 중심적으로 서사화하고자 하는 군사적인 대결의 또 다른 두 주체입니다.

군담소설의 군사적인 대결은 중국과 오랑캐의 갈등, 충신과 역신의 갈등을 해결하는 군담소설 특유의 문제 해결 방식입니다. 황제의 바른 통치에 의해 이룩된 태평한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오랑캐와 역신은 ‘악의 축’이며, 이러한 악의 축을 제거하고 태평한 세계 질서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식은 군사적인 대결뿐이라는 생각을 군담소설은 담아내고 있습니다.


군담소설은 철저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 의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국은 선이며 중국의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오랑캐는 악이고, 황제는 선이며 황제의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역신은 악으로 규정됩니다. 조웅과 같은 영웅적 주인공은 중국과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절대 선’을 지켜나가는 투사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황제는 ‘절대 선’이고 중국과 황제에 도전하는 오랑캐와 역신은 ‘절대 악’인가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중국’과 ‘황제’가 절대 선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과 황제를 절대 선으로 추앙하면서 수직적으로 차별화했던 중세 사회의 가치와 질서가 붕괴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역사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군담소설은 오히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그 가치와 질서를 조웅과 같은 인물을 내세워 옹호하고 있으니, 역사의 진행 방향을 거스르는 참으로 보수적인 성격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의 독자들은 이렇듯 보수적인 성격의 작품을 왜 그토록 애독했을까요? 그 이유는, 조선 후기의 소설 독자들이 비극적인 역사적 경험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 역사적 경험을 이용하는 지배층의 잘못된 논리를 똑바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의 독자들이 사로잡혀 있었던 역사적 경험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두 전쟁을 떠올려야 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불리는 이 두 전쟁은 모두 당시 야만적인 오랑캐 국가로 취급받던 일본과 만주족이 세계의 중심인 중국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일본은 중국을 점령하지 못하고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패퇴되었지만, 만주족은 중원을 장악하고 청나라를 세웠습니다. 한반도에서 조선을 상대로 벌인 이 두 전쟁은 중국을 대신하는 대리전이요, 중국을 제압하기 앞서 치러진 전초전으로, 조선은 이 동아시아 전쟁의 직접적인 당사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경험했습니다. 이 고통과 피해의 경험이 100년이 훨씬 넘는 후대에까지 심각하게 기억되어, 오랑캐의 침입을 물리치고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회복하는 군담소설을 애독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100년이 훨씬 지나서까지 고통의 경험이 간직될 수 있었던 것은 지배층이 고통의 경험을 기억케 하여 이를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의 전쟁 이후 중국의 명나라는 나라가 망했으며, 일본의 도요토미 막부 정권은 붕괴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은 전쟁의 최대 피해국이면서도 정치적으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왕조 권력의 중심 세력들은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를 우리가 물리쳐야 한다는 북벌(北伐)의 논리를 앞세워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북벌의 논리는 군담소설의 널리 애독되던 18-19세기까지 일반 백성들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보수적인 성격의 군담소설이 그토록 애독된 데에는 이러한 까닭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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