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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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렬전(2) : 고난 그리고 가족애

김현양

 <유충렬전>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펼쳐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 속에서 이상적인 현실에 대한 소망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유충렬전>은 다른 군담소설에 비해 고난을 경험하는 인물들의 수가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경험하는 고난이 크게 확장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가족애’와 ‘평화’의 소중함을 우리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유충렬전>에서 고난을 경험하는 인물은 매우 다양합니다. 위로는 황제와 유심의 가족으로부터 아래로는 하층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이 심각한 고난을 경험합니다. 황제와 그 가족의 고난은 역신의 반역과 외적의 침입에 의해 야기됩니다. 외적이 침입하자 정한담은 오히려 외적과 내통하고 황제를 몰아냅니다. 황제는 황성을 침범한 정한담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황후와 태후는 외적에게 잡혀가 토굴 속에 갇히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유심과 그 가족의 고난은 정한담의 정치적 박해로 인해 야기됩니다. 유심은 정한담의 주장에 맞서 기병불가론(起兵不可論)을 주장하다 연경으로 유배(流配) 당하며, 장부인은 정한담의 추적을 피해 도망하다 수적(水賊) 마용에게 붙잡혀 가고, 어린 유충렬은 물에 내던져져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모두가 삶의 근거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정도로 심각한 고난에 빠지게 됩니다.

유충렬의 처가인 강승상 일가도 정한담에 의해 혹독한 고난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한담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 강승상은 유심처럼 유배를 당하며, 그 부인은 금부도사에게 압송되는 도중에 청수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강낭자만이 홀로 금부나장의 도움으로 도망합니다. 강낭자는 어쩔 수 없이 관비(官婢)의 수양딸이 되어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갑니다.

하층 인물의 고난은 한 백발노인 일가를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란(戰亂)을 평정하고 도성으로 귀환한 유충렬 앞에 한 노인이 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소인은 동성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삼대독자(三代獨子)의 몸으로 다행히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아 귀히 길러 모두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만고역적 정한담이 난리를 일으켜 용상에 높이 앉아 스스로 황제라 하면서 백성을 도탄(塗炭)에 빠뜨리고, 소인의 아들 두 놈을 다 끌고 전쟁터로 데려가 자식 하나를 죽였습니다. 옥황상제께서 우리 남경을 도우시어 장군님을 남경에 점지하여, 장군님께서 도적의 진중에 달려들어 적장 정문걸을 단칼에 베고 천자를 구하셨습니다. 소인은 남은 자식을 성안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정한담에게 죽을 것이라 생각하여 한밤중에 중군 조정만에게로 도망가게 하였습니다. 장군님 진중으로 보내고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밤마다 ‘우리 장군님이 싸움에서 이기게 해 주옵소서.' 빌었더니, 장군님의 힘을 입어 우리 명나라 군사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소인의 남은 자식이 살아와서 이 손자를 두었으니, 이놈은 장군님의 자식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제는 소인이 죽어도 백골을 묻어줄 자식이 있고 조상의 제사를 받들 손자가 있사오니, 이는 모두다 장군님의 덕이옵니다. 소인이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나 다만 술 한 잔을 장군님 전에 올리니 만세무강 하옵소서. 소인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백발노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노인은 정한담이 일으킨 전란으로 인해 아들 둘을 모두 잃을 뻔했습니다. 노인의 말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노인의 딸 역시 전란의 와중에 외적에게 끌려갔습니다. 강승상을 모시고 있던 조낭자가 이 노인의 딸이었던 것입니다. 유충렬이 강승상을 구하러 갔을 때, 곁에 있던 조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장군님이 어찌 알고 와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어 고국산천을 다시 보고 부모 동생 다시 보게 하니, 이런 일이 또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도 살아 계시옵니까?


백발노인이 자신의 가족을 지켜준 은혜에 감사했듯이, 그의 딸인 조낭자 또한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 동생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에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 유심이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반대할 때, 백성의 고통을 지적한 바 있는데, 백성의 고통이란 죽음뿐만 아니라 전란으로 인해 삶의 근거를 잃고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유충렬전>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상층의 인물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유충렬은 적에게 항복해야 할 위기에 처한 황제를 구한 후, 황제 앞에서 통곡하며,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장(前場)에 왔다고 말합니다. 위기에 처한 황제를 구했지만, 황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비의 원수를 갚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황제를 구한 것도, 나라를 구한 것도 그 행위의 바탕에는 가족애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제 자신도 가족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바람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습니다. 황제 또한 통곡하며 유충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몸이 하늘에 죄를 짓고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가 충신인 그대를 얻어 회복되게 되었도다. 그러나 부모와 처자를 오랑캐 놈에게 보내고 나 혼자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천하를 그대에게 전하니 그리 알라. 과인은 이제 죽어 혼백이나마 호국에 들어가 모친을 만나보게 된다면 황천(黃泉)에 들어가도 남은 한이 없으리라.


이 같은 황제의 말은, 비록 매우 감정적인 상태에서 행해진 것이지만, 황제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어머니와 처자가 오랑캐에게 잡혀갔으므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목숨을 버리고 오랑캐 땅으로 가서 이들 가족을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 마음이야 모를 바 아니지만, 일국의 황제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도 <유충렬전>이 가족관계의 회복에 대단한 서사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황제만이 나라를 버리고 가족을 찾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유충렬도 황제를 구한 후 가족을 구하러 왔다고 했으며, 백발노인도 자신의 가족을 보전하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낭자 역시 부모, 동생을 다시 보게 된 것을 앞세워 말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안위는 그 다음입니다. 오히려 ‘나라’보다도 ‘가족’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군담소설과는 달리 여러 인물의 고난을 심각하게 그려낸 것을 <유충렬전>의 특징이라 했습니다. 특별히 <유충렬전>에서 이토록 여러 인물의 고난을 심각하게 그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가족으로부터 이탈된 삶의 고단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외적의 침입과 간신의 반역을 물리쳐 나라를 구한 뒤, 가족을 구하고 상봉하는 후반부를 비중 있게 그리고 있는 것 역시 가족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유충렬의 영웅적 능력에 의해 평화가 다시 찾아 왔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은 무너진 구질서, 해체된 가족관계가 회복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유충렬전>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질서, 황제가 인간의 중심이 되는 질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그 질서를 복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서사적 얼개의 사이사이에 강렬한 가족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애의 메시지는 중국과 황제로 대표되는 국가의 우선적, 절대적 가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애의 메시지를 새로운 질서를 소망하는 꿈으로만 읽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세 사회를 움직여 온 가족주의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충렬전>의 가족애는, 국가의 우선적․절대적 가치에 도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새롭게 인식되어야 할 소중한 의미인 것은 분명합니다.

<유충렬전>의 가족애는 우리에게 전란에 의해 초래되는 고통의 무게를 실감하게 합니다. 전란은 가족을 파괴하며, 가족으로부터 이탈된 삶은 극히 고통스럽습니다. 더욱이 그 전란이 아무런 명분도 없는 것이라면, 그 고통은 더욱 감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중국을 침입한 외적이나, 황제에 반역한 간신에게서 자기중심적인 이익을 탐하는 것 이상의 동기를 발견할 수 없을 때, 그 전쟁은 더욱 고통스러운 기억일 뿐입니다. <유충렬전>의 독자는 유충렬이라는 영웅적 인물이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것에 환호했던 것이며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겨준 외적과 역신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증오를 표출했던 것입니다. 그 환호는 평화로운 삶에 대한 환호이며, 그 증오는 일상의 삶을 파괴하는 전란에 대한 증오였던 것입니다.


장경남 2010.11.11. 4:22 pm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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