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꼼과 어소시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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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의 <부산의 바깥> 09 : 선동 – 폭우의 가르침

mazzang 쪽지  

 

 

 

 

09 : 선동 – 폭우의 가르침 

 

 

 

 

 

金 飛

 

 

 

 

 

 

 

 

 

   비가 내리면 비를 맞아야 한다. 비를 피해 이리저리 뛰어봐야 소용없다. 무엇에든 스며들고 젖어드는 빗줄기를 피할 방법은 없다. 처마 밑으로 뛰어드는 일은 기껏 머리 위에 쏟아지는 방울을 가리는 것일 뿐이고, 사방 문을 닫고 방에 틀어박혀도 세상을 적신 축축한 물기운은 금세 문지방을 넘어온다. 폭우를 예보하는 리포터들의 음성은 점점 다급해지지만, 국지성이라는 핑계는 쏟아지는 비를 막아서지 못한다. 불어난 물에 잠기고 휩쓸리는 것들을 우리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속에 내가 없기를,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이기적이고 얄팍한 바람을 소원하며 우리는 식은 땀을 닦아내야 한다.

 

   겨우 우산 하나 준비하고 일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태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오래 전부터 오늘을 가늠해야 했을 것이다. 오늘은 다시 아득한 미래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다급한 시간이다. 어제를 게을리하다가 오늘을 잃고 오늘을 놓치면서 내일을 꿈꾸고 있는 것이, 지금 폭우 속에 비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오늘 같은 어떻게 사진을 찍느냐고 누군가 만류했지만, 나는 커다란 우산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혼자서 쓰기에 우산은 너무 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우산에 채이고 밀리며 거리 위에 사람들은 내게 눈을 흘겼지만, 나는 우산 아래 혼자만의 안위를 생각하며 씩씩하게 걸었다. 낡은 슬리퍼 하나를 끼워 신은 맨발이었다. 냇물을 건너듯 서로 다른 물길이 흐르는 골목을 지나 여러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서, 나는 부산의 북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선동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회룡저수지를 품은 마을은 이미 세찬 빗줄기 속에 흠뻑 젖고 있었다. 나를 내려놓은 마을 버스는 어차피 이상 가지도 못하고 곳에서 방향을 틀었다. 우산을 받치고 운전기사는 버스를 정비하려 했지만, 사나운 빗줄기는 우리들을 나무라듯 사방에서 들이치고 있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저수지를 향해 나는 여러 셔터를 눌렀다. 하늘과 수면의 경계는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흐릿했다. 포말의 먼지를 일으키는지 수면 위에 세상은 황량한 미래를 경고하듯 흙빛이었다. 하늘도 없고 초록의 푸르름도 없으며 수면 위에 잔잔히 흘러가는 평화도 없었다. 사람의 시체라도 토해낼듯 몸으로 세찬 빗방울을 견디고 있는 흙빛 풍경은 시커먼 심연을 감추고 있었다. 어차피 고즈넉한 풍경 따위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눈앞에 드러난 물빛 투쟁은 엄청났고 힘으로 부딪히며 쏟아내는 파열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지워버리는 듯했다.

 

 

 

                                                                

                    

  

 

 

 

   허겁지겁 나는 작은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인적이 없는 골목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빗줄기의 차지였다. 어차피 평등하지 않은 위에 서로 다른 크기의 웅덩이를 새겨놓고, 빗물은 누구든 집어삼킬 태세였다. 무지개 우산을 주민이 다급하게 골목길로 나섰지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혼자서 꿈꾸는 무지개는 안타깝게도 그저 조악할 뿐이었다. 다른 주민이 트럭을 이끌며 골목 끝에서 달려 나왔지만, 마개를 놓아버린 세계의 결심은 너무도 쉽게 우리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우산 하나를 간신히 들고, 이제는 모두 같은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쓸모없이 커다란 우산을 접으며 나는 버려진 집의 낡은 처마 아래로 들어섰다. 잔뜩 찌그러진 처마 아래 유리문 너머엔, 버려진 공허가 가득했다. 그렇게 버려지고 낡은 채로, 다시 누군가에게 몸뚱이를 내어주는 집의 몸짓이 나는 여전히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물론 절박한 순간에도 남의 어리석음을 탓하고만 있는, 구제불능의 어리석음이기도 했고.

 

 

 

 

 

                    

 

 

 

  처마 아래에서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노래 같기도 하고 다급한 종용 같기도 하다. 버려진 몸짓을 흉내내며 나는 낡은 집에 조심스레 기대어본다. 내가 버린 것들에게서, 내가 잊어버린 것들에게서 따스한 온기를 기대하는 꼴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뻔뻔스럽게 눈을 감는다. 그런 나를 손가락질하려고 매년 폭우는 그렇게 거세어지고 있는 건지도.

 

   도망치려면 걷는 수밖에 없다. 제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날마다 위협하는 세계를 탈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커다란 우산을 펴며 나는 골목길로 나섰다. 산길로 이어지는 것만 같은 골목에 들어서니 다듬어진 초록의 나무들이 도열하듯 눈앞에 나타났다. 너무도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름답다고 말할 뻔했다. 깎이고 패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 , 인공의 아름다움은 조작된 시간임을 우리는 모두 잊은 살고 있다. 그렇게 반듯한 세계를 지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이 훼손되고 찢겨져버렸다. 반듯하다는 것이 일직선으로 가지런하리라는 것은 편견일 , 들고 나며 멋대로 키를 키운 것이 어쩌면 가장 반듯하고 가지런한 시간인 것을.

 

 

 

 

 

 

   다시 곳에서 돌아나와 다른 골목으로 올라섰지만, 마을은 발자국 지나지 않아 쉽게 끝나버렸다. 다시 돌아나와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지만, 곳에도 이상 마을은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폭우 속에 길을 나섰으면서도 평화롭고 고즈넉한 마을 풍경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골목 여기저기를 헤매 다니며 나는 상실감에 몸을 떨었다. 다급한 몸짓의 주민들도 이상 보이지 않았고, 빗물이 흘러넘치는 거리에서 나는 너무 커다란 우산을 혼자였다. 밤의 어둠마저 드리우면 어쩌나 순간 겁이 , 다시 정류장 쪽으로 도망치듯 발길을 옮겼다. 전쟁터 같았던 저수지 풍경을 다시 보게 생각을 하니 마뜩잖았는데, 전까지 뿌옇던 수면 위가 말개지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무섭도록 쏟아져 내리던 빗줄기도 어느새 사그라졌다. 그저 희미하기만 했던 저수지 건너편의 산자락도 초록의 풍경을 수줍게 드러냈고, 저수지를 가득 채웠던 습기는 하얀 구름이 되어 조용히 산자락을 품어안고 있었다. 투명해진 하늘은 한껏 울고 세상의 같았다. 울먹이며 이제 자신을 끌어 안아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섰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듯 세계를 위협하던 폭우는 마침내 멈췄다.

 

 

잊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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