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꼼과 어소시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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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있음의 이름으로, <아프꼼과 어소시에이션>을 시작하며

mazzang 쪽지  

권명아

 

 

우리는<아프꼼과 어소시에이션>이라는 여럿의 이름으로 글을 연재해나가고자 한다. 이 글들이 민족문학사 연구소의 취지나, 문학 연구자의 관심과 온전히 맞닿아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 문학 공부에 발을 들여놓을 때 문학 공부가 곧 삶의 해방을 향한 열정에 다름 아니라던 그 선배들의 말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면 삶의 해방을 위한 열정의 실천이 꼭 제도화된 문학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감히 누가 힘주어 말할 수 있을까. 굳이 누군가 반드시 문학 연구가 ‘이 곳’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삶의 해방을 위한 열정의 자리가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발화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의 불안에 하루하루를 지새울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글’이, ‘나의 연구’가 그 누구의 불안한 삶에도 가닿지 못한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고 연구를 하는 것인가? 그런 소박한 질문이 아프꼼(aff-com)이라는 코뮨의 자리에 나를 서게 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여럿과의 함께 있음의 부대낌의 노동 속에 삶-공부를 꾸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아프꼼과 어소시에이션>은 그러한 부대낌의 노동이 생성해나가는 삶-공부의 이행의 순간들을 전하게 될 것이다.

 

첫 글은 아프꼼이 최근 창간한 웹진 <정념과 어소시에이션>의 여는 글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체 글이나 웹진은 다음 싸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www.aff-com.net/177

 

 

 

다른 삶을 향한 발걸음들, 기쁨만으로는 걸어갈 수 없는 길들

 

권명아

 

돌봄 혹은 돌아봄

 

오거나이저로서 <연구모임 a>를 꾸릴 때도, <아프꼼>으로 이행할 때도,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삶의 기반이 소진되어 가는 이 시대에 그래도 이 모임이 작으나마 '돌봄'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연구모임 a의 활동이 '아지트(agit)'라는 화두를 내걸고 진행된 것도 이 때문이다. 돌봄의 공동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자매애적 친밀성의 나눔은 페미니즘 운동체들이 공통으로 기반하고 있는 이상이기도 하지만, 삶의 모든 안정적 기반을 약탈해버린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절실해진 이상이라 할 것이다. 특히 지역 엘리트로 살아남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지역의 인문예술 종사자들에게 금세라도 무너져버릴 수 있는 취약한 삶의 기반을 서로 돌아보고, 나누는 돌봄의 관계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소회를 밝히자면, 오랜 세월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이 '생명'을 어디까지 위태롭게 하는가를 경험하고, 목도하고, 그리고 '살아남은 자'로서 '후배'들에게는 이러한 위태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길을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같잖은 '소명의식'도 갖고 있었다 할 것이다.

 

대학에 얹혀있는 집단으로서 이러한 고민 혹은 딜레마는 더욱 가중된다. 돌봄에 대한 소명의식은 손쉽게 전유되거나 소비되고, 혹은 제도에서 익숙하게 습득한 인정투쟁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프꼼은 이 부분에서 실패를 거듭해왔다. 누군가는 이러한 돌봄의 관계가 오히려 공동체를 망치는 일이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 조언의 함의를 모르지 않지만, 배움을 주는 것, 혹은 인문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의 방기가 아닐까 하는 질문에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관성적이고 권력적인 대학/문화 제도에 내재한 엘리트 양성과 '후학양성'의 관행과 권력관계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선생 세대들과 전혀 다른 존재론적 위기감에 직면해 있는 '후배'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삶/연구/존재의 지속성을 가늠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는 것, 이 길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아마 오거나이저로서 나의 역량의 문제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오거나이저로서,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나는 얼마간, 아니 많은 부분 실패했다고 생각된다. 창간의 포부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념이지만, 웹진의 창간은 실은 오로지 이 실패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다른 삶을 향한 발걸음들, 기쁨만으로는 걸어갈 수 없는 길들

 

하여 그간의 다양한 꼬뮨 및 아지트들과의 어소시에이션의 한 결실로 웹진 창간호를 꾸려보았다. 또 그간 만나왔던 다양한 a들에게 그들의 코뮨의 경험과 ''을 전해 듣기를 청하였다. 이를 통해 아프꼼의 작업에 대한 비평적 개입을 나누는 것이 웹진 창간호의 주요한 목적이다. 웹진 창간을 통해 아프꼼은 약간의 행로의 변화를 갖게 될 예정이다. 물론 이러한 행로의 변화는 연구모임 a가 아프꼼이 되는 이행의 과정, 그리고 무수한 이행의 과정들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연구모임 a의 활동의 근저에 놓인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실은 <지역에서, 함께-있음>에 연구모임 a를 기입하는 것, 혹은 <지역에서의 함께-있음의 구조>에 새로운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이었다.

변정희의 「아프꼼(aff-com)을 비평하다」(http://www.aff-com.net/175)에서도 논의되듯이 ''지금의 아프꼼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어떤 실패의 기록들'이라면, 그 실패는 마땅히 연대의 실패와 더불어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본다. 김대성의 「폐허의 자리에서, 한계의 자리에서 말을 태우다」(http://www.aff-com.net/174)에서 전하듯이, ''분리되어 있는 간격을 극복하려는 의지들의 결집, 그것이 바로 매체다. 누군가를 부르는 (조난) 신호와 그 요청에 응답하려는 의지의 결집으로 매체가 구성될 수 있을 때, 그 자리는 (존재)미학의 장소가 된다.'' 신지영의 글 「코뮨의 병에서 시작되는 연대의 쾌락」(http://www.aff-com.net/176)에서 비평을 얻었듯이 그런 점에서 바로 코뮨과 연대의 쾌락, 다른 삶을 향한 열정은 이 실패로부터 차이를 향해, 코뮨의 포기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실패로부터 다시 매달림으로라는 기조만으로는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임태훈의 「핑크빛 공동체에서 배우는 인문학 운동의 미래」(http://www.aff-com.net/173)에서 논의되듯이, ''의심과 착오, 실망의 순간조차 운동의 과정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원초적인 힘이 존재한다. 그 힘은 철부지들의 핑크빛 공동체가 그러하듯, 갑갑한 생활에 억눌려 있더라도 좀처럼 기죽지 않고 더 재밌는 일에 작당하는 발랄한 마음과 몸에서 구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아프꼼은 슬픔의 정념과 실패의 에너지를 놀이의 흥분과 웃음의 에너지로 이행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지역의 차이를 들여다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그 차이를 넘어서는 지평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 지평은 역설적으로 지역의 안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안과 밖을 넘나드는 그 걸음에서 우리는 너무나 좁디좁은 우리의 닫힌 지평의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신현아의 「워크샵, 국경을 걸어서 넘다」(http://www.aff-com.net/172), 양순주의 「불투명한 나의 목소리로부터」(http://www.aff-com.net/171)는 이 발걸음 속에서 부대낀 정동의 기록이다. 이번 워크샵에서 만난 니시야마 유지 선생과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철학에의 권리>>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흥미로운 시사점을 주기도 하였다(http://www.aff-com.net/179).자크 데리다가 창립한 국제철학학교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철학에의 권리>>와 니시야마 유지 선생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규모나 역사는 다르지만, 국제철학학교와 이에 대한 반응들을 아프꼼의 경우와 비교해볼 수 있었다. 제도의 사이, 구멍에 있는 아프꼼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송진희의 「그곳에 '있음'으로 남아있는 것들: 외로움의 출처와 출구」(http://www.aff-com.net/170)에서 날카롭게 지적되듯이 ''그 값은 실천을 동반했을 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쓰지 않고, 하지 않고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인문'이 그리고 '공부''쓰기'만 해서는 '하기'의 말의 중요성을 영영 모를 일이다.

 

실패와, 고된 노동과 돌봄의 살림살이의 기진맥진과 외로움 끝에서 우리는 당신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우리의 고단했던 길에 응답해주었던 모든 a들에게 또다시 인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가 만난(association) 그 모든 a(agit이자 anyone인)들에게, 실패와 슬픔과 환희와 웃음과 엇갈린 길, 되돌아갈 수 없는 길, 혹은 함께 걸어가는 길의 모든 a들에게 안녕을!

 

우리는 당신들과의 실패와 슬픔과 순간의 환희를 통해 비로소 a-ff-com, 모든, 누구나인 a들이 걸어가는 코뮨(com)을, 그 연대의 쾌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웹진 전체 보기)

http://www.aff-com.net/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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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프꼼과 '어소시에이션'입니다.
2012.09.1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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